홍신익 평판칼럼 - 배우 문소리, 그녀는 더 이상 꽃이 아니다
홍신익 평판칼럼 - 배우 문소리, 그녀는 더 이상 꽃이 아니다
  • 홍신익 브랜드평판 전문위원
  • 승인 2018.09.10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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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데뷔했다. 뇌성마비 장애인 연기로 영화계의 한 획을 그었고, 대종상을 비롯한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바로 배우 문소리다. 그녀의 이력을 보기만 해도 평범하진 않아 보인다. 그렇게 한국의 여배우로 살아온 지 어언 19년. 그녀는 딱 작년 이맘때쯤 감독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기도 했다.

"배우한테 중요한 건 연기력이 아닌 것 같아. 매력이 더 중요해"

감독·주연 모두 문소리인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초반에 나오는 대사다. 연기하는 사람이 배우이건만 매력이 더 중요하다니. 하긴, 반쯤은 맞는 말이다. 연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매력의 너비가 달라지기도 하니까. 배우 문소리를 얘기하기 전에 이 영화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인 문소리가 극에서 빠져나온 실제 문소리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을 기다리는 자, 작품이 맞춰주는 자, 작품에 매달리는 자. 문소리도 그 어디쯤 있다.
 

홍신익 브랜드평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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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막으로 구성된 이 영화 속엔 남들이 화려하게만 바라보는 여배우와 보통의 여성들과 특별히 다를 바가 없는 직업인으로서의 여배우, 그럼에도 택한 길을 저버리지 않고 예술인으로 남으려는 여배우의 모습이 담겨있다.

절친들과 등산에 가서 우연히 한 감독을 만난다. 그 감독 역시 자신의 지인들과 왔는데 서로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감독은 뻐기고 배우는 꾸긴다. 배우는 "어떤 역할이라도 다 할 수 있다"며 머리를 조아리고 감독은 실행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애매한 말만 늘어놓는다. 우연히 막걸리 집에서 만나 감독은 뻗어 자고 감독의 지인들과 함께한 술자리는 더 가관이었다.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여배우라는 이유로, 문소리라는 이유로 수도 없는 폭격이 쏟아진다. 상다리를 뒤집어엎어버리고 싶어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온 뒤 담배 한 개비 무는 게 전부다.

한 번 본 남과도 그럴진대, 부닥친 현실은 더 힘에 부친다. 돈을 쌓아놓고 살 것 같은 이미지완 달리 신용대출을 받아야 하고, 엄마는 불편한 딸 속도 모른 채 치과 가서 사진 찍어주면 임플란트가 50% 할인이라며 닦달한다. 겨우 들어오는 일자리는 페이도 받을 수 없는 특별출연이고 고사하는 자리에서조차 모질게 끊지 못한다. 아, 그리고 은행 대출 계약서에 서명하러 가는 순간에도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개인 사인까지 해줘야 한다.

지친 문소리에게 남편 장준환 감독은 버거우면 하나라도 줄이라며 그녀를 다독인다. "시어머니도 하나 자식도 하나 작품도 일 년에 해봐야 하난데 뭘 줄이냐"는 문소리. 애 키우고 시댁, 친정 챙기고 큐 소리와 함께 극에 몰입해 예술을 해야 하는 여자 배우들은 고상한 여배우보단 '진정한 일꾼'에 가까워 보인다.

모든 것이 끝나가는 3막 언덕배기에 다다르면 생각 없는 신인 여배우 하나가 질문을 던진다. "연기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어요?" 뜬구름 잡는 것만큼 방법론적인 질문에 문소리는 이렇게 답한다. "뭘 어떻게 해요. 그냥 될 때까지 하는 거죠. 계속“

지극히 주관적인 매력으로 연예인들은 밥을 먹고 산다. 도대체 팬인지 안티인지, 그도 아니면 악령인지 모를 사람들의 가시 같은 말을 시시때때로 들어야만 한다. 분명 저 인간이 내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도 되도록이면 참고 우아하려 감정을 깨문다.

여자 연기자에게만 '여'배우라는 성별 표시가 붙고, 대중을 비롯해 심지어 무리 속 그들도 여배우라는 이상적인 뜻을 정의해놓고 사는 듯하다. 방송에서 여성 연기자들이 털털하거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여배우가, 여배우인데, 여배우답지 않게 등등 오만 조건이 따라붙는다.

문소리는 한 인터뷰에서 "'여배우'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답했다. 여배우라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그저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노출이 있는 작품, 아이 엄마 역할을 하고 나면 앞으로의 작품에 제약을 받을 거라는 주변의 얘기에도 불구하고 편견에 겁먹지 않고 소신껏 선택했던 작품들이 지금의 문소리를 만들어왔다.

연예인이라는 큰 틀 보다 부여된 고유의 역할의 모습이 더 빛나는 사람이 있다. 문소리가 그렇다. 어떤 장르의 연기를 선호한다는 통계를 내릴 수 없을 정도로 주조연에 상관없이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여성으로서, 영화인으로서 계속해서 범위를 넓히고 있는 그녀는 스스로 바랐던 것처럼 꽃이 아닌 기둥과 뿌리, 그리고 거름이 되고 있는 거다. 자연스럽고 깊게 익어온 배우이자 멋진 영화인 문소리의 걸음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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