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신익 칼럼 - 배우 김정현, ‘굿윌헌팅’이 필요한 시간
홍신익 칼럼 - 배우 김정현, ‘굿윌헌팅’이 필요한 시간
  • 홍신익 브랜드평판 전문위원
  • 승인 2018.09.0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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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정현이 결국 드라마 '시간'에서 중도 하차했다. 이에 대한 언론과 대중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연일 실시간검색어 상위권에 올랐고, 드라마 제목과 맞물려 그가 버티지 못한 시간에 대한 얘기로 떠들썩했다.

초반 기자간담회에서부터 '태도 논란'으로 화려한 장막을 열었던 김정현. 다행히 드라마가 회를 거듭할수록 짙어지는 몰입도와 연기력에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어느 정도 불식되었다. 그런데 종영을 불과 8회 앞둔 시점, 결국 그는 흰 수건을 던지고 말았다. 정말 시한부라는 특이설정에 대한 부담감과 과몰입으로 격한 혼란을 느꼈던 걸까.

그를 처음 본 건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였다. 공효진의 하나 뿐인 남동생으로 분했던 그에게서 반항아적이면서도 왠지 아련한 눈빛이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배우 김강우와 여러 면에서 닮아있다는 생각도 했다.

 

홍신익 브랜드평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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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예종' 동기들에 비하면 데뷔(2012년)가 조금 늦은 편인데다 단편영화와 드라마 조연을 오가며 지금의 기회를 얻기까지 절로 쥐어진 사탕은 아니었을 거다. 스스로 연기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간만큼, 이토록 배반적인 행보가 있을까.

몇 달 전, KBS드라마스페셜 '까까머리의 연애'를 뒤늦게 보면서 조연이 아닌 주연 김정현에 대해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충분히 익어갈 준비가 되어있는 배우였고, 보여줄 수 있는 범위가 넓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 '시간'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다. '누구에게나 유한한 시간. 결정적인 매 순간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해 지나간 시간 속에서 엮이는 네 남녀의 이야기'라는 시놉시스는 캐스팅을 알기 전부터 흥미로웠다. 김정현의 작품을 다 챙겨본 건 아니었지만 그가 남자 주인공으로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후 반가웠다.

김정현은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드라마 '시간'은 유난히 기대가 되고 욕심도 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 저로 하여금 관객과 시청자의 인생이 좀 더 풍요로워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이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다수의 인터뷰 속 김정현은 성실하고 진중한 배우의 모습 그대로였다.

남들은 경험해보지 못할 다양한 역할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라는 직업이 가진 특이성과 달란트는 매력적이다. 극중 인물과 동일시를 통한 극사실주의적 연기스타일인 '메소드 연기'는 대부분의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겉으로 흉내만 내는 양식적인 역할놀이가 아닌,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극중 인물의 삶과 감정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작품이 끝난 후 '몰입'에 대한 배우들의 고백이 뒤따르는 것은 더 이상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이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몰입을 했다면 아마 구치소 면회에서 인터뷰를 해야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출연작 중 가장 몰입이 덜 된 작품"이라고 밝힌 얘긴 이미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JTBC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의 이준호 또한 붕괴사고 트라우마를 표현하느라 스스로를 가두면서 혹독한 자기암시를 했다고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몰입한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배제하고 상상력으로 짜여진 인물에 투영되어야 하는 일이다. 인생의 주체를 언제나 '나'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일지도 모른다. 관객은 날이 갈수록 똑똑해지고, 배우는 진짜보다 더한 진짜 같은 모습으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내야한다. 그러나 본인이 맡은 인물에 대한 지나친 동화는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어디까지나 극중이고 역할일 뿐이니. 자신을 챙기지 못할 만큼의 몰입은 분명 과한 것이다.

물 한 모금을 조금만 잘못 마셔도 구설수에 오르는 게 연예인들의 비애다. 물론 함께하는 배우들과 드라마를 위해 수없이 많은 노고를 견뎌온 스태프들을 저버린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서는 비판받는 것이 마땅하다. 허나 배우 한사람의 인생이 끝난 듯 매초마다 비난을 쏟아낼 필요는 없다. 누구든 예기치 못한 선택을 할 수 있고, 세간의 차가운 시선보다 더한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가 지금껏 연기를 위해 달려온,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길이 분명 있었을 거다. 어떤 이유에서 잘못 들어섰다고 해도, 다시 돌아나갈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묻는 질문에 '굿윌헌팅'이라고 답하며 "영화 속 "괜찮다"는 말이 자신을 위로해줬다"던 김정현. 그에게 다시 한 번 '굿윌헌팅'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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