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R과 기업의 미래] 호감도와 평판은 브랜드의 운명을 어떻게 좌우하는가?
[CSR과 기업의 미래] 호감도와 평판은 브랜드의 운명을 어떻게 좌우하는가?
  • 최규문
  • 승인 2018.05.3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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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갑질에서 시작된 브랜드 평판 추락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2018년 4월 12일,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가 '김기식'에서 갑자기 '조현민'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뉴스토픽 실시간 검색어로는 "조현민 갑질 논란"이 함께 뜨기 시작했다. 왠지 익숙해뵈는 이름 아닌가! 땅콩회항의 주인공 조현아 부사장의 동생이다. 대한항공 여객마케팅부 전무이면서 진에어 부사장과 한진관광 대표이사직을 함께 맡고 있다. 땅콩회항 사건이 여론의 뭇매를 맞던 시기에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뜬다는 것은 그리 반길 일이 아니다.

긴급한 대형 사건이나 사고, 충격적인 루머나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바이러스성 이슈'로 터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인 탓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는 땅콩이 아니라 '물컵'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서울의 한 광고대행사에 일하는 누군가가 인터넷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에 잠시 올렸다가 삭제한 글 내용이 한 언론에 띄어 불거졌다. 내용인 즉, 얼마 전 조현민 전무가 참석한 회의 도중에 자신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받지 못하자 '물컵을 내던지고 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지만 비난 여론이 식지 않고 확산되자 조 전무가 대행사 직원들에게 보낸 사과 문자 메시지까지 공개하며 진화에 나섰다. 조 전무도 자신의 SNS를 통해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어리석고 경솔한 제 행동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해서는 안 될 행동으로 더 할 말이 없습니다. / 회의에 참석했던 광고대행사 직원분들에게 개별적으로 사과는 했습니다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후략) " (2018.4.12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페이스북)

언론에 따르면 실제 회의가 있었던 건 3월 16일, 직원들에게 사과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은 4월 3일로 알려진다. 페이스북에 본인의 사과문이 올라온 건 4월 12일 오후 5시 무렵. 이날 낮 조 전무의 갑질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지 4시간 만이다. 문제는 해당 광고대행사 직원들에게 사과 문자를 보낸 시점이 [블라인드]에 폭로 글이 올라온 다음날이었다는 점이다.

과연 진정어린 자발적 사과였을까 의심받는 게 당연했다.

아니나다를까, 여론의 질타가 식기는커녕 추가 폭로가 잇따랐다. 그의 '갑질 행태'는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는 소문이다. '평소 안 좋은 평판'이 대한항공 측의 방어 노력을 허사로 만들고 여론을 악화시킨 셈이다.

사건이 알려지자 언니에 이어 동생까지 그런 건 '가정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에는 조 전무의 갑질을 처벌하고 나라 망신을 키우지 않도록 '대한'항공 이름과 '태극' 문양 '로고'를 쓰지 못하도록 조치해달라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대한항공 주가는 사건이 불거진 당일 하루 전날 대비 6.55%가 떨어졌다.
 
우리 사회 미투 운동을 둘러싼 여러 유명인들의 사례를 통해 개인에게 평판이 얼마나 중요하고 치명적인 것인지 살펴보았다. 연예인이나 스타는 자신의 이름이 곧 브랜드이고 상품이다. 따라서  이름에 대한 평판이 훼손될 경우 그로 인한 타격은 회복하기 힘들 만큼 치명적이다. 평소 '외부로' 알려진 이미지와 실제 행동 사이에 편차가 클수록 실망도 커지고 그에 비례해서 피해의 강도도 커진다. 개그맨 김생민이 한창 주가를 올려가던 와중에 10년 전 성추행 사실이 드러난 것만으로 하루 아침에 자신이 진행하던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를 잊지 말자.

기업은 경영진을 포함한 임직원이 모인 '집합체' 조직이다.

기업에 대한 평판은 구성원들의 행동 뿐만 아니라 그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평가가 모두 합해져서 전체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한다. 따라서 기업에 대한 평가나 이를 반영한 브랜드 평판 지수는 최대한 객관적인 측정 기준과 지표를 찾아 각각의 요소에 대한 가중치를 반영하여 종합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은 단순히 기업의 매출액 규모가 크다거나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그 기업을 무조건 좋게 인식하거나 높은 평판 점수를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개인의 인기도가 높을수록 평판에 미치는 타격이 크듯이, 기업 또한 그 기업을 대표하는 얼굴들이 해당 조직에서 맡고 있는 지위나 역할의 크기에 따라 기업 이미지나 평판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가 달라진다. '땅콩회항'의 아픈 기억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터진 '물컵 사건'은 재벌 오너 가족의 행실 하나가 기업 전체의 브랜드 평판에 얼마나 큰 피해로 직결될 수 있는지를 입증해주는 사례로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부언해둘 게 있다. '평판'은 사람들의 인식이 집단적으로 모여서 일정 기간 유지될 때 형성되는 것이다. 이 말은 평판이란 게 한 번 만들어지고나면 영구 불변하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특정 사건이나 드러난 이슈에 따라 평판은 나빠질 수도 있지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타이레놀' 사건은 위기에 빠진 기업 평판을 회복시킨 극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1982년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주민 7명이 갑자기 사망한다. 사망자들의 공통점은 타이레놀을 복용했다는 점. 미국 전역이 공포에 빠지고, 약 250건 이상의 추가 사망 사례가 타이레놀 때문인 것으로 의심 받았다. 약품 판매량과 기업 평판은 동시에 바닥으로 추락했다. 연방 당국의 수사로 누군가 소매 단계에서 고의로 타이레놀을 청산가리로 오염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업의 실수라는 누명은 풀렸지만, 공포에 떨어야 했던 소비자의 신뢰가 곧바로 되살아나긴 어려웠다. 이 때 존슨앤드존슨은 경영자가 직접 광고에 나와서 이렇게 말한다.

"소비자 여러분, 지금 당장 타이레놀 복용을 중단하고, OO일 이전에 제조된 제품은 모두 폐기해 주십시오."

존슨앤드존슨은 회사의 누명이 벗겨졌지만 용의자 신고에 현상금을 내걸었고, 피해자들에게 일일이 위로 편지를 보냈다. 또 이미 판매된 타이레놀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널리 알리는 동시에, 판매된 타이레놀을 전량 환불해주고 회수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약품 포장 공정을 개선하여 이물질 주입이 어렵도록 변경했고 한번 뜯은 포장은 흔적이 남도록 조치했다.

이와 같은 빠르고 철저한 대처 덕분에 거의 망할 뻔했던 존슨앤드존슨은 불과 몇 달 만에 잃었던 시장 점유율을 다시 회복했다. 회사 이미지는 크게 개선되고 기업 평판은 더 좋아졌다. 그 후로 기업 '위기관리'의 모범이자 '윤리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오늘날까지 두고두고 칭송받는다.  

때로는 망가진 평판이 기업의 풍토를 개선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미투 폭로나 특권 관행 및 갑질 행태 근절을 위한 SNS 고발은 우리 사회 전체의 도덕성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 점에서 대한항공의 반복되는 '오너 리스크'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진지하게 돌이켜보면 좋겠다. 평소 행실과 태도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호감이 얼마라도 유지되었다면 이토록 큰 이슈로 대중의 공분을 불러 일으키는 게 가능했을까?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이 '오너 리스크'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나기를 원한다면 사회적 평판을 형성하는 주체들의 사고 방식과 소통 양식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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