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 사회의 도래....땅콩회항에서 #METOO 불길까지
평판 사회의 도래....땅콩회항에서 #METOO 불길까지
  • 최규문
  • 승인 2018.05.17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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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2014년 12월 5일,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086편 여객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로 향하던 중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와 사무장을 내리게 한다. 이 소동 덕분에 이륙 시간이 46분이나 지연된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그 유명한 "땅콩 회항" 사건이다.

#장면2. 2018년 1월 29일 밤, JTBC 뉴스룸.

통영 지방검찰청 소속 현직 여성 검사 한 사람이 출연해 8년 전 신입 시절 한 장례식장 자리에서 자신이 검찰 고위 인사들에게 당한 성추행 사건을 공개 폭로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미투 운동의 불을 지핀다.

#장면3. 2018년 2월 19일,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 현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김보름, 박지우 선수가 같은 팀인 노선영 선수를 멀찌감치 뒤쳐진 채로 놔둔 채 자신들만 앞서 들어오는 비상식적인 플레이를 연출하고, 저조한 기록의 원인을 꼴찌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함으로써 세간의 비난을 자초한다.

#장면4. 2018년 3월 5일 밤, 다시 JTBC 뉴스룸.

첫 미투 폭로가 있고 한 달 여가 흐른 날, 이윤택 감독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 16명이 공동으로 고소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 실태를 눈물로 고발한다. 이날 밤 JTBC 뉴스룸에는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던 현직 도지사의 여 비서가 출연해 수 개월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여 전 국민을 멘붕 상태로 빠뜨린다.

 

첫 장면 소동을 일으킨 건 당시 대한항공 기내서비스 호텔사업 부문 총괄부사장을 맡고 있던 조현아 씨다. 해당 직에서 물러난 것은 물론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5월 항소심에서 집행 유예로 석방된다. 이 사건은 재벌 기업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오너의 가족들일지라도 일반 국민들의 상식과 법 감정을 잘못 건드리면 큰 화를 자초할 수 있음을 보여준 교훈 사례로 두고 두고 회자되고 있다.

두 번째 장면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미투 운동의 불길은 바람 앞의 들불처럼 번진다. 첫 폭로로부터 불과 한 달 사이 문단과 극단 등 문화계를 비롯해 학계와 연예계, 공직에 이르기까지 40명이 넘는 미투 피의자 이름이 줄줄이 언론을 장식한다. 고은 시인에서부터 연극계 대부로 알려진 이윤택 연출감독, 배우 조민기, 오달수, 박재동 화백, 김기덕 감독, 그리고 안희정 충남지사에 이르기까지 유명 공인들의 성추행 및 성폭행에 관한 폭로가 줄지어 터져 나왔다. 배우 조민기는 피해자와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평창 올림픽에서 최악의 장면으로 기록된 팀추월 경기 팀의 내분 사건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동료선수를 챙기지 않은 두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고 빙상연맹의 비리를 척결해 달라는 국민청원으로 이어졌다. 청원에는 하루도 안 지나 20만 명이 서명하고, 6일만에 60만 명을 넘긴다. 김보름은 자신의 주종목인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내고 큰절을 올리면서 용서를 구했지만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후원사였던 NEPA는 후원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한다.

위에서 예시한 장면들의 공통점은 무엇이고, 사회적 파장과 의미는 무엇일까?

장면 2. 3. 4.의 사실 여부를 둘러싼 진실 공방은 아마도 이 책이 출간되는 시점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법정과 여론 재판의 두 축에서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최종적인 법정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이러한 사례들이 주는 시사점은 크게 아래의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사회적 강자와 약자 사이에 거대한 '힘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전통적으로 돈이나 권력을 가진 쪽이 언론이나 법조계에 뻗친 권력망을 기반으로 약자를 억누르거나 인권을 유린하고도 법망의 처벌을 벗어나거나 피해자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워 진실을 은폐하곤 했다. 하지만 위 사례들에서 보다시피 세상이 바뀌었다. '돈과 권력'이 아닌 '진실과 지지'로부터 힘이 나온다. 힘의 원천이 '정보의 진실성'과 '대중의 판단' 으로 옮겨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유념해볼 점이 있다. '사회적 명성'은 개인의 권력과 명예, 부에 뒤따르는 상징이지만, 그 자체가 대중 여론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경우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슈의 당사자들이 대기업 임원이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저명인사가 아니었다면, 메달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던 선수가 아니었다면, 사람들의 관심이 그렇게까지 집중되고 집단 행동이 촉발될 수 있었을까?  역설적이게도 강자가 지닌 지명도가 높을수록, 평소 이미지가 좋을수록, 믿음이 두터울수록 명성은 여론 재판에서 훨씬 더 불리한 약점으로 작용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때문이다.

둘째, 약자의 승리는 '대중의 지지'로 뒷받침될 때라야 가능하고 현실화된다.
 
'땅콩 회항' 사건을 돌아보자. 매뉴얼에 규정된 대로 일했던 실무자들에겐 잘못이 없었다. 승객들이 보는 앞에서 승무원을 무릎 꿇려 질책하고 비행기를 되돌려 사무장을 하선시킨 임원의 행패는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가해자의 지위가 피해자들의 '밥그릇'을 쥐고 있는 최고위 상사라는 점을 고려할 때 '예전 같았으면' 참고 넘어가거나 없었던 일로 가려질 수도 있었을 법하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억울함을 참지 않았고 언론을 통해 사실이 알려지고 목격한 승객의 증언이 나오자 일반 대중의 공분은 한꺼번에 폭발했다.

당시는 TV드라마 '미생'이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우리 사회 직장에 만연한 "갑질" 행태에 대한 비판이 사방에서 터져나오던 시기였다. 포스코 왕상무의 라면 행패에서부터 남양유업 영업팀 직원의 대리점주에 대한 폭언 횡포까지 대기업 임직원들의 갑질 행태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던 시점이다. 대항항공 임원진들은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와 변화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는커녕 사태의 원인을 피해자측이 제공한 것처럼 뒤집어씌워 거짓 진술을 강요하고 회유로 마무리하려고 시도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막게 되는 상황으로 키운 셈이다.

법정 재판으로 갈 것을 고려하여 책임을 회피하고자 한 것이겠지만 이런 비겁한 태도가 '마녀사냥'에 가까운 공격을 자초한 셈이다. 짤막한 단신으로 시작된 가십성 기사 하나가 SNS를 통해 증폭되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에 대한 동정과 공감이 일어났다. 결국 여론재판의 압력이 법정 판결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면피를 해보려다 형을 더한 꼴이 되었다. 대중을 화나게 하는 건 매를 버는 지름길이다.

셋째, 소셜미디어의 힘이 신문 방송 등 전통 미디어의 힘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여론이 이토록 빠르게 조직되는 원리는 무엇일까? 대중의 힘을 강하게 만드는 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 바탕에는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뒤바꾼 '모바일' 스마트폰의 힘이 깔려 있다. 흔히 'SNS'로 대변되는 소셜미디어는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소식을 접하고 전달하는 새로운 뉴스 매체이자, 친구나 지인들과 의견과 정보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는 '연결 미디어'로 자리 잡았다.

화재나 지진, 각종 사건 사고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사진을 찍고 트윗을 날리고 영상 화면을 생중계하는 건 이제 기자들만의 몫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든 누구나 기자로 변신하여 미디어의 역할을 수행한다. 심지어 사람이 없는 곳에 설치되어 24시간 작동하는 CC-TV가 파수꾼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모바일 기기를 손에 쥔 사람들 각자가 독립된 미디어 채널인 셈이다. 이 채널들을 연결하는 게 바로 SNS다!

소셜미디어 파워의 원천은 연결성과 신속성, 그리고 비독점성이다. 세계 곳곳 24시간 사람과 사람으로 연결된 거대한 '집단 정보 수집 전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어떤 주제든 어떤 상황이든 실시간으로 전파하는 '독점 불가능한' 미디어 망으로 진화한 것이 바로 소셜미디어다. 취재 인력이나 정보원이 제한된 일개 신문사나 방송사의 힘으로 따라잡기에는 절대 역부족인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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